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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싶은 섬

소안 항일운동기념관

소안 항일운동기념관
주소
소안면 가학리 236
전화
061-552-0516
추천
9
이용시간
상시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장 없음
장애인시설
없음

소안도는 일제 식민지 암측기에 항일구국의 횃불을 드높게 쳐들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독립유공자 19명을 비롯해 57명의 애국지사가 배출됐다. 많은 지역민이 사립 소안학교를 만들어 후학을 지도하고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일제36년 동안 섬 주민이 투옥된 기간을 총합산하면 300년 섬 주민 8,000명 중에서 800명이 ‘불령선인’으로 감시를 받았다.
소안항일운동 기념탑과 기념관에는 소안도가 배출한 항일운동지도자 88명의 부조와 사진을 모셔져 있다.
소안도 항일운동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에 들어와서의 일이지만, 1920년대 당시로서는 신문에 대서특필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민족운동의 전개 거점으로 노농연합대성회사건, 배달청년회사건, 소안학교의 폐교와 복교운동 등을 통하여 활발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소안도 항일운동의 핵심인물은 송내호(1895~1928)였다. 송내호는 비밀결사조직인 수의위친계(守議爲親契)를 1922년 조직하고, 소안도 내 유지와 청년들에 의해 조직된 배달청년회를 1923년께 진보적인 청년호로 대폭 개편하였으며, 1924년에는 소안노농연합대성회, 1926년에는 살자회, 1927년에는 일심단을 조직한 중심 인물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이산들에 의한 항일운동은 완도 각 지역으로 퍼져나감으로써 1930년대에는 고금도, 금일도, 신지도 등지에서도 항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소안도는 일제 강점기 3000여 명에 불과한 주민들이 13년에 걸쳐 지소유권 반혼 소송을 벌여 승리로 이끈 항일의 섬으로 유명하다. 1990년에는 외부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지면서 비로서 항일 성지라는 역사가 복원됐고, 해방60년이 넘은 최근에야 독림운동기념관이 들어섰다.
소안도는 일제 강점기 거센 항일운동을 펼쳐 전국의 면 단위로는 가장 많은 57면의 애국지사를 낳은 호국정신과 애국 충정이 살아있는 섬이다. 소안도 가학리에는 2003년 10월 문을 연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세워져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소안의 애국선열들과 그들의 항일투쟁 정신을 사적 교훈으로 되새겨주고 있다.
소안도는 완도읍에서 서부도로를 이용하여 화흥포 항에서 배를 이용한다.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가량을 가면 소안도에 도착한다.

위치 및 주변정보(주변 3km 이내)

소안면 가학리 236

소안 항일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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