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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독서칼럼 고전을 읽는 까닭--(내용 출천 : 청소년을 위한 독서칼럼)

작성일
2013-04-15
등록자
정현숙
조회수
307
첨부파일(0)
얼마 전 어느 문화회관에서 열린 ‘그리스 로마 신화전’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신화 속에 나오는 여러 인물과 사건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학생들의 모습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나와 나란히 한 유치원 어린이들이 미술관 안내자의 인도로 한 작품 한 작품씩 관람을 하고 있었다. 안내자는 딱딱하게 설명하지 않고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낼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진행했다. 그런데 그들과 잠시 같이 하는 동안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안내자는 회화나 조각 앞에서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을 물었는데, 아이들은 누구 하나가 아닌 전체가 다 이구동성으로 정답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 만한 쉬운 답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으로 만들어 사모했던 사람은 누구죠?”
“피그말리온이요!”
“그 조각을 사람으로 만들어 준 건 누구죠?”
“아프로디테요!” “비너스요!”
“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식 이름이고, 비너스는 로마식 이름이죠.”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네 세 여신 가운데 누가 제일 아름다운지 가리게 했던 사람은?”
“파리스요!”
“파리스는 어느 나라 왕자죠?”
“트로이요!”
따로 설명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유치원의 수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또래 자녀를 키우는 함께 있던 분 말씀은 이랬다.
“요즘 애들은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릴 때부터 봐서 신들의 계보를 줄줄 꿰더라고.”
신기하고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어릴 때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린이들의 필독서 가운데 빠지지 않았다. 토머스 불핀치가 편역한 그리스 로마 책을 보면 “신화야말로 서양 문화 예술을 이해하는 지침”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나는 신들의 족보와 얽히고설킨 사연을 재미있게 읽었고, 최종 목적지는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트로이 전쟁 이야기)와 『오디세이아』(오디세우스의 모험)이었다.
당시에는 신화가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신화가 불핀치의 말처럼 “서양 문화 예술을 이해하는 지침”임을 확인할 방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손쉬워져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쉽게 다녀올 수 있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번역가인 이윤기씨가 신화의 대중화에 물꼬를 텄다. 그림을 소개하는 저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신화로 읽는 서양 미술사’와 같은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밑바탕에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나온 것이다. 내 아이가 남들에게 뒤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우리 부모들에게 신화는 앞으로 체험할 해외여행의 예습이자 교양 습득의 기초 자료로 생각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신화를 보고 알아야 할 것은 박물관에서 그림을 보고 이해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이해이다. 오래 전 신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19세기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너드 쇼가 같은 제목의 희곡으로 옮겼다. 당대 영국의 상류층과 하층민 사이의 계급 갈등에 대한 풍자이자, 올바른 영어 사용에 대한 사회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작품이었다.
피그말리온이 사랑한 조각이 사랑의 여신의 도움으로 인간이 되듯, 꽃 파는 소녀 일라이자가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의 레슨을 받고 왕실에서나 쓸 법한 말씨와 맵시를 갖게 되는 모습이 그 내용이다. 이 희곡은 곧바로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뮤지컬로 각색되어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에도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신화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현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 것이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여신들의 아름다움을 심판하는 내용은 루벤스를 비롯한 숱한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다. 그가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어 판결을 내리고 이에 대한 답례로 여신이 헬레나라는 미녀를 파리스에게 약속하면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헬레나가 이미 그리스의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 또한 수많은 시인의 영감을 불러 일으켰고, 그 장관을 소개하는 영화도 여럿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는 <아름다운 헬레나>라는 오페레타를 작곡했는데, 바로 그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작곡가는 이 작품에서 허례허식을 일삼는 나폴레옹 3세 황제와 그에게 빌붙어 백성들을 착취하는 탐관오리들을 비판하고 있다. 오늘날 이 오페라를 공연하면서 헬레나를 프랑스의 정신으로, 그를 데려가는 파리스를 온 세계를 뒤덮는 미국 문화로 비유하기도 한다.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상징들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비단 신화만이 아니다. 무릇 고전은 그것이 탄생한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 시대를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한다. 우리가 고전에서 읽어야 할 것은 바로 그 보편성과 독창성이지, 줄거리와 주인공 이름이 아니다. 신화와 고전을 달달 외워서 단답형 질문에 답하고 똑같은 논술 답안을 내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것이 나와 내 주변 삶을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고전을 읽는 목적이다.
정준호 (음악 칼럼니스트, KBS 클래식 FM 저녁 8시 FM 실황음악회 진행)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박은영
061-550-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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