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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서칼럼- 조용하고 의연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 김경집 (인문학자, 작가)

작성일
2013-05-13
등록자
정현숙
조회수
458
첨부파일(0)
자료출처 : 청소년을 위한 독서칼럼

어쩌다 깊은 산중의 절에 있으면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하여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소리를 질러댑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경우를 볼까요? 모두가 자기 이야기만 하려 하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미션이 주어지면 서로를 속이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도만 찾으려 합니다. 물론 오락프로그램의 성격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용인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미 그 정도가 넘었다 싶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그런 방식으로 짜여집니다.
미국의 문화역사학자 워런 서스먼은 이런 현상을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바뀐 탓으로 진단합니다. 인격은 형성하는 데에도, 그 값을 알아채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성격은 짧은 시간에 파악됩니다. 그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문화가 만연하게 되니 모두가 소리를 질러댑니다. 소리를 지르는 건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한 로펌의 유능한 변호사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수전 케인은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자신의 삶은 과연 성공한 삶인가? 남들 보기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자신도 그렇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용감하게 변호사 일을 그만 둡니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외향적인 성취만 성공으로 여기는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성격의 문화에서는 내성적 혹은 내향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물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결정할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겪는 집단 따돌림 현상도 따지고 보면 그런 성격의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나의 가치를 상대의 몰가치를 통해 드러내고 싶어하는 조바심과 외향적 판단에만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삶을 바꾸는 것은 조용하고 의연한 삶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성격의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렇게 조용하고 의연한 삶을 선택하면 바보 취급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르고 심지어 여러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을 멀리 보면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실천하고 누리는 사람은 바로 그렇게 인격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조용하고 의연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며 나를 재구성하고 조정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한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고독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 하지만 고독은 ‘자발적인 고립’입니다.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니다. 고립은 ‘타율적인 고독’입니다. 이것을 착각하면 안 됩니다.
고독은 자신을 만나고 대화하며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이라 하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시간만 축내는 것은 공상이나 망상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고독의 가장 좋은 벗이며 훌륭한 도구는 바로 책입니다. 조용히 물러나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성격의 문화에서 인격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당장 먹기엔 곶감이라고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일은 누구나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어울리지 못할 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거기엔 내 삶이 없습니다. 그런 삶에 익숙해지면 결코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누군가를 붙잡고 싶고 소리를 질러대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때론 조용히 물러나 책을 읽다보면 내 삶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눈이 떠집니다. 그것을 통해 나는 주체적 자아를 마련하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체적이고 인격적인 자아를 청소년기에 형성하지 못하면 삶은 망가지기 쉽습니다.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은 개인과 사회 모두를 건강하게 발전시켜줍니다. 그러므로 책은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벗입니다. 남의 눈과 힘에 휘둘려 살면 정작 나의 삶은 없습니다. 조용하고 의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바꾸는 진정한 힘이며 가치입니다. 그 가장 큰 힘이 바로 책과의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박은영
061-550-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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