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 ‘적토미’ 귀족쌀로 화려하게 부활
- 작성일
-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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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대받다 명맥 끊긴 토종 야생벼 생존경쟁 수단으로 노화 등 폴리페놀 성분 함유…전국 소비자 인기몰이
“수확량 없어서 못팔아” kg당 2만,5000원 국내 최고 친환경·유기농 결실… 녹토미 등 신제품 개발 박차
장흥 ‘쇠똥구리 작목회’ 문 병 갑 총무
9일 오전 장흥군 용산면 월송리 재송마을.
백자도요지가 발견되면서 백자골로도 불리는 마을 초입, 일반벼보다 월등히 키가 큰 벼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막바지 수확을 앞두고 잘 자란 검은색 이삭이 고개를 숙인 ‘적토미’다.
수확이 거의 끝나 이삭이 패 일 무렵 절정에 다다른 붉은 물결의 장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명불허전이다.
재송마을은 인근 운주마을과 함께 잊혀진 적토미를 재배해 부활을 알린 곳으로, 두 마을 농부들이 힘을 모아 만든 ‘쇠똥구리 작목회’는 적토미 생산의 보고이자 가능성의 기지로 통한다.
쇠똥구리 작목회 사람들의 적토미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파역은 작목회 문병갑(46·사진)총무다.
“지난 2003년 이었죠. 2001년 작목회를 결성한 이후 다시 나타난 쇠똥구리로 대변되는 친환경 농산물 그 이상이 것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오염되지 않은 땅에서만 자라는 또 다른 벼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죠.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벼, 그리고 일본 품종까지 샅샅이 뒤졌고, 적토미를 알게 됐죠. 야생성이 강해 경작이 힘들고 수확량이 적은 적토미의 특성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재배를 시작했어요.”
그들이 선택한 적토미는 토종 야생벼로 수확량이 일반벼보다 훨씬 적은데다 겉이 붉고 품질이 낮아 ‘앵미’라고 불리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에서 재배됐지만 갈대처럼 키가 커 재배하기도 힘들어 홀대 받다 결국 명맥이 끊긴 품종이었다.
“적토미에는 염증이나 노화를 막아주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죠. 상품성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애기였죠. 개량종이 아닌 토종 적토미 품종을 어렵게 구해 곧바로 작목회 18농가 참여해 10ha 규모로 재배를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들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우선 키가 일반벼의 2배인 150㎝까지 자랐다. 약한 바람에도 금새 쓰러졌다. 해충도 끊이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무던히도 겪었어요. 화학비료나 퇴비를 넣으면 오히려 생산이 어려워져 재배가 무척 까다로웠어요. 작목반원들과 갈등도 많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죠. 다른 벼 옆에서 키우면 잡종이 생기는 등 숱한 어려움을 거쳐 겨우 재배법을 찾아냈어요.”
자체 채종포를 운영하며 종자는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는 작목회원들에게만 보급하는 등 그들의 노력은 2년 뒤인 2005년 본격 수확으로 결실을 맺었다.
3만평의 논에서 300평당 150kg의 적토미를 생산한 것. 같은 규모에서 평균 550kg이 나오는 일반벼의 3배 이상 떨어지는 수확량이지만 작목반원들이 갖는 성취감을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수확의 기쁨도 잠시 이번엔 판로라는 그보다 더한 난관이 발목을 잡았다.
“1만5,000kg를 수확했지만 팔 곳이 없었어요. 답답했죠. 농업박람회는 물론 서울, 광주 등 홍보를 위해 안가본데가 없었어요. 수없는 발품을 팔았지만 결과는 실패였죠. 전체 생산량의 20%만 값을 받고 팔았고 나머지는 모두 홍보용으로 소진됐죠.”
당시 1ha를 재배했던 문 총무 자신도 1,000만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
소득 없는 농사는 곧바로 작목회원들의 탈퇴로 이어졌다.
18농가로 시작한 작목회는 7농가로 줄었다.
그들은 또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았다. 공동생산과 판매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개인별 판매로 방향을 틀었고, 판매량를 고려해 생산량도 조절했다.
각자 백화점과 쇼핑몰 등 판로를 위해 뛰었다.
문병갑 총무는 쇼핑몰이나 식자재 공급업체, 고환석 작목회장은 관공서, 한창본 작목반장은 백화점 등 각자 영역을 구축하는 식이었다.
작목회의 규정도 더욱 까다롭게 했다. 무농약 이상 유기농과 농지원부와 친환경인증 면적이 동일한 농가만 참여를 허락했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였다.
친환경·유기농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입소문과 맞물려 참살이 열풍도 크게 한몫했다.
적토미가 염증이나 피부 노화를 막는 폴리페놀(탄닌계) 성분이 100g당 92.12㎎으로 일반 쌀보다 200~700배에 이르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성분 등 기능성 성분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오자 주문이 쏟아졌다.
배고픈 시절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한국의 야생벼가 친환경·유기농의 옷을 입은 기능성 쌀로 화려하게 되살아 난 것이다.
한 가마니(80㎏)에 200만원에 팔리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도 탔고, ‘귀족의 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자체 상표를 달고 백화점과 농협 등을 통해 ㎏당 2만5,000원에 모두 팔렸다.
쌀뜨물로 세수를 하면 피부가 촉촉해지는 원리를 살려 피부 산화 예방용 화장품 ‘스킨 푸드’라는 제품도 나왔다.
판로가 확보되자 재배면적도 크게 늘렸다.
올해 7농가에서 모두 4만5,000평의 적토미 농사를 지었다. 그래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문 총무는 “현재 kg당 2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쇼핑몰이나 직거래, 택배로 모두 출하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다른 친환경 작물과 연계해서 시장을 더욱 넓혀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적토미를 천덕꾸러기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귀족쌀로 탈바꿈시킨 그들이지만 안고 있는 고민도 적지않다.
도정부터 보관, 가공 등 생산 이후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
“적토미를 도정한 뒤 일반벼를 도정하려면 기계 라인을 모두 청소해야 해요. 일반쌀에 물이 들기 때문이죠. 그런 탓에 받아주는 정미소 찾기가 쉽지 않아요. 받아줄때까지 무턱대고 기다리는 식이죠. 보관도 쉽지 않아요. 벌레가 금방 생기는 탓이죠. 이 때문에 저온시설이 필수적이지만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유사품과의 전쟁도 만만치 않다.
일본에서 조경용을 키운 ‘홍미’라는 쌀과 기존의 빨간쌀인 ‘여주 적미’ 등이 적토미의 유명세를 업고 kg당 7,000원에서 1만원의 저가 공세를 벌이고 있다.
적토미와는 전혀 다른 쌀들이 ‘적토미 인 척’하며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적토미는 해가 지나면 황토색이 훨씬 짙어지지만 유사품은 가지색으로 색이 변하죠. 적토미가 알려지면서 이런저런 쌀들이 시장이 들어와 고민이 커요.”
생산부터 도정까지 일반벼보다 생산비가 3배 이상 더 드는 고된 적토미 생산.
한단계 도약을 이룬 그들의 꿈은 뭘까.
“농사를 저농약·무농약·유기농으로 짓자 사라졌던 쇠똥구리가 나타나기 시작했죠. 작목회의 이름인 쇠똥구리는 땅이 살아있고 생태계 복원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물이죠. 친환경·유기농의 산물이자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고요.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적토미를 되살려 냈어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것이죠. 적토미 뿐 아니라 녹토미 등 앞으로 다양한 작물로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