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보고와 해상무역
통일 신라시대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외래 문물에 대한 욕구가 점차 강해지던 시기다.관무역으로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자 민간인들의소규모 사무역이 시작되고있던 이 때, 장보고는 세계를 무대로 초국적 민간자유무역을 발전 시켰다.중국물건이 수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나 일본의 무역품들도 활발하게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일본과의 무역도 활발했다.일본 귀족들에게 공급된 여러가지 생활용품 중에는 신라에서 생산된 것을 거래하는 직접무역과 함께, 이슬람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에 들어온 것을 일본에 연결하는 중계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적산법화원
820년대 초 장보고대사가 세운 사찰로 당시의국제무역항이었던 중국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 적산에 위치하고 있다.장보고 선단의 활동 중심지로 산동성 일대에 살던 재당신라인들의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로 유학 온 신라와 일본 승려들의 안식처로, 또한 동북아 문화교류의 장이 되었다.
양주
양자강 하류 양주는 대운하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고대부터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신라인을 비롯, 페르시아 ·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항해하던 이슬람 상인들의 최종 기착지이기도 했다.장보고 선단의 교역활동으로 해상 실크로드는 이곳에서 한반도와 일본으로 까지 연결되었다.
영파
영파는 고대부터 중국의 중요한 국제중계 무역항으로 주변 산물이 대형 무역선에 실려 역과 한국 · 일본으로 수출되었는데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선도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여 일본으로 가던 배였다.이 가운데 장보고 선단의 주요 교류 품목인 월주요청자(越州窯, 해무리굽자기)가 이곳에서 생산되어 수출되었는데 장보고대사에 의해 그 기술이 우리나라에 전수되어 훗날 고려청자의우수성을 높이는 밑걸음이 돼 세계 최고 수준의 '비색청자(翡色淸姿)'로 발전하게 된다.
하카타
하카타(후쿠오카)에는 장보고 선단이 무역을 하였던 유적지가 남아있다.다자이후는 고대 한국 · 중국과의 교섭을 관장하던 국가 기관으로 신라 사신이나 무역상들이 일본에 오면 가장 먼저 일을 보던 곳이다.홍려관은 다자이후에 속한 기관으로 상인들을 접대하거나 숙박을 하던 영빈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