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05년 ~ 1777년
왕족으로 1755년 2월 나주 괘서사건으로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 양반들과 문화 교류를 하다 괘씸죄에 걸려 1762년 진도를 거쳐 같은 해 9월5일 신지도로 이배되었음.신지도에서 거주하면서 해남 대흥사, 강진 백련암, 구례 천은사, 고창 선운사부안 내소사의 현판 글씨. 이외 대부분의 작품에 낙관이 없음.
이광사는 1705년에 태어나 스승 하곡 정제두와 백하 윤순의 문하에서 양명학과 서학이라는 최고의 학문과 예술을 접목하여 독창적인 우리 글씨인 동국진체를 창안하였다.그는 1755년 나주 괘서사건으로 큰아버지 진유가 처벌받을때 연좌되어 7년간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으나 학문이 출중해 많은 학자들이 모이자 유배지를 완도군 신지도로 이배되었다. 그곳에서 15년간(1762~1777년)의 야인생활 속에서 서예의 체계적 이론서인 서결을 완성하였고, 가장 한국적인 서체의모태가 된 둥국진체를 남도에서 뿌리내렸다.
완도군은 동국진체의 예술사적 위치를 재조명하는 학술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고장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계승발전 하기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