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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소개

생일면의 연혁

  • 1896년(고종33년) 완도군 설군 - 생일면 설립
  • 1916년 평일.생일.금당을 합하여 금일면이라 칭함
  • 1980년 금일읍 승격으로 금일읍 생일출장소로 개칭
  • 1989년 4월 1일 생일출장소 → 생일면으로 승격

마을유래

서성마을

1600년대 초 장수 황씨 황이헌의 2남 황재운씨가 장흥 장평에서 입향하여 거주중 장흥 관산 위충재의 2녀 위대진과 결혼 정착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명유래

1700년대 백운산 서쪽 꼭대기에 주민들이 도적(해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성을 쌓고,도적을 막아냈는데,성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서성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생일도의 섬 모양이 새와 같고 서성리가 새의 밥통 부근에 해당되어 주민이 다들 잘 살아 속칭 큰동네라 불리우고 있다.
일제시대 유촌리와 합하여 유서리라 칭하였으나 해방후 분구하였다

전설

옛날 이섬에서 각종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지나가던 중이 이름을 새로 짓고 절을 세우라는 말에 새로 태어나라는 뜻으로 날생(生)날일(日)字를 붙여 이섬 이름을 생일이라고 하였고 산봉우리에 암자를 지어 재앙을 예방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지명을 생일이라하고 있고 학서암이라는 절이 있다.

유물유적

학서암 - 약 300년전 금일 일원에 큰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재앙을 막기 위하여, 절을 지었는데, 산의 모형이 학의 형태로 생겨 학서암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배출인물

정남주 - 자 참봉

특기사항

도적(해적)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성을 쌓았다고 전하나, 지금은 약3㎞가량의 성터가 남아 있다. 전 주민이 모여 매년 정월 초이튿날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유촌마을

1700년 중기 충주지씨 지두씨가 장흥대덕 실리에서 멀리 내려다 보니 섬들이 많이 있어 사람이 살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금의 굴 앞으로 입도하여, 밭을 개간하려고 하다 먼저 입도한 마씨와 다툼이 있어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보니 평야지대가 있어 유촌리로 내려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명유래

지두씨가 처음 입도하여 보니 생긴 지형이 학의 날개쪽에 자리잡고 있는 형태이고 버드나무가날개 깃을 이루고 있어 속칭 버들개라 하였으나, 버들자를 따서 유서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서성리와 합하여 유서리 하였으나, 해방후 분구했다.

전설

버들게 도깨비 - 서성리와 유촌리 사이 버드나무 숲속에서 매년 정초 도깨비가 나타나 마을 처녀를 잡아가고 마을을 어지럽히므로, 마을 사람들이 궁리한 끝에 매년 정월 초이튿날 진수성찬을 장만하여 제를 지냈으며 지금도 지내고 있다.

유물유적

학서암 - 약 300년전 금일 일원에 큰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재앙을 막기 위하여, 절을 지었는데, 산의 모형이 학의 형태로 생겨 학서암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배출인물

지승욱 - 해양수산청 과장

특기사항

백운산 - 높이 483m의 군내 제2봉이며 정상에 오르면 구름이 항상 발 아래 있다하여 백운산이라고 한다. 각종 많은 약초가 서식하고 있는 산이기도 한다.

금곡마을

1600년대 초 번남 박씨가 처음 입주하여 살았다고 하나 그 후손이 없어 유래를 알 수 없고, 1700년 중기 초계 최씨 최명춘씨가 강진 작천에서 생일도로 이향 하여 유서리 당산에서 살다가 이거하여 보니 번남 박씨가 살고 있어 같이 동거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번남 박씨, 초계 최씨등이 입도하여보니 마을에 돌이 금으로 보였고 실제 금을 팠다고하여 샛금이라고 불리워 오다가 일제시대에 금곡리로 바꾸어 부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설

금곡리의 약수터 - 마을 뒷산에 약수터가 있는데, 최씨 일가가 처음 정착할 때 판 샘터로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데 산신령이 나타나 이 샘이 세 번 마르면 지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일러줬는데 지금까지 꼭 두 번이 말랐다는 입설이 있다. 한번은 한일합방이고 또, 한번은 6ㆍ25동난 때 였다고 한다.

배출인물

최한주 - 증통정대부

특기사항

마을 중앙에 있는 귀목나무 밑에서 매년 정월초 이튿날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으로부터 500m 거리에 길이 1㎞, 폭 100m의 모래사장이 있다. 특히 사질이 좋아 금모래라 칭하고 있다.

용출마을

조선조 선조때에 군마를 기르는 목장이 설치되어 양축하는 관리와 그 가족이 거주하였다는 입설이 있으나, 후손이 살지 않고 효종때 파평 윤씨 일가가 전남 나주에서 난을 피해 입향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지명유래

마을 앞에 용량도라는 섬에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하여 리명을 용맹이라 불러오다가 용출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

용량도의 전설 - 약 400년 전 용 암수가 살다가 황제의 명을 받아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대ㆍ소용량도에 용이 승천한 흔적이 있다.

배출인물

마성람 - 자통정대부

특기사항

소용량도의 정상에 70m의 굴이 해변으로 나있고 정상표면직경 50m 둘레 80m의 구덩이 및 용형상의 바위가 있으며, 수목 군락지 및 수려한 경치로 관광명소가 있는 지역임 매년 정초 용량도를 통하여 풍어를 비는 용황제를 지내고 있다.

굴전마을

약 400년전 언양 김씨가 완도청산에서 처음 입도하였다고 하나 입향조 및 유래는 후손이 없어 알 수 없고 숙종대에 김해 김씨, 관산 마씨등이 입성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명유래

마을앞 용량도 상봉에 용이 승천한 굴이 있어, 마을이 굴에서 바라보는 전방에 있어 마을명을 굴전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전설

으슴바위의 전설 - 마을앞 어귀에 있는 바위인데 이 바위밑의 굴에서 천년묵은 구렁이가 살고 있다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 는데 바위 밑으로 1㎞ 가량 굴이 뚫어져있어 용량도까지 이어졌다고 하며, 옛날 선조들은 솔가지 불로 이 굴을 통과하여 섬을 왕래하였다고 전한다.

배출인물

정진옥 - 자 중구부사겸 동지(종2품)

특기사항

사체를 가매장하였다가 1~2년후 묘를 다시쓰는 초분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덕우마을

약 350년 전에 초계 최씨가 전남장흥에서 처음 입도하여 일가를 형성하면서 그 후 경주 정씨, 김해 김씨등이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명유래

섬 모양이 멀리 청산에서 바라다보면 살찐소가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 이름을 덕우도라 전하였다고 한다.

전설

바위섬의 전설 - 3년마다 이 바위섬 부근을 지나가는 선박이 섬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므로 이 마을에서 매년 정초 당산제를 지낸후 이 바위섬 부근에 소 머리를 바쳐 사고를 예방한다는 전설이다.

배출인물

김재선 - 자가선 중추부사(子 재근)

특기사항

수산자원이 풍부한 2종 항구이며 각종 어류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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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  생일면 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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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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